충효사소개

삼세보전(三世寶殿)은 충효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각종 법회가 봉행되는 곳이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불사에 동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통 가람양식의 목조건물로써 천년을 이어가 호법의 상징으로 장엄하기 그지없다.

또한 일천지장목탱(위모설법전)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대작불사라 할 수 있다.

충효사를 찾는 불자님들에게 환희심을 일으키는 연화장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무언의 위모설법으로 효(孝)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

삼세보전안에는 삼존불과 일천지장보살목탱, 제석탱등이 봉안되있다.

삼존불은 과거연등불, 현세석가모니불, 미래미륵불을 모시고 있다.

삼세보전은 충효사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그것은 충효사가 처음 시작한 불사가 1인1지장 부처님을 모시는 일이었는데, 그 결과물인 일천지장보살목탱을 모신 전각이 바로 삼세보전이기 때문이다.

불자 한 명 한 명의 동참으로 조성된 일천지장보살목탱에는 동참불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삼세부처님전에 공양미와 초공양, 향공양등 각종공양을 올리거나 친견하시면 업장소멸과 함께 큰 복덕을 받을 수 있다.

과거, 현세, 미래세의 부처님이 모두 나투신 곳이다.

경건한 자세로 자기소원을 발원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것을 우리불자님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삼세보전 일천지장보살목탱 앞에는 삼세인등불이 모셔져 있는데, 인등은 부처님께 밝히는 등불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밝히면 일상사의 소원들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2) 제석탱

  1. 조성연대 : 조선 영조 40년
  2. 문화재등록번호 : 경북도지정문화재 제 299호
  3. 내용 : 충효사제석탱은 제석중심탱의 특이한 소형탱화로써 제석은 의자에 앉은 형상인데 손으로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연꽃을 두 손으로 받쳐든 형식이다. 제석의 전방좌우에는 일월관을 쓴 일관천지와 월관천자가 시립하였고, 그 옆에는 고관을 쓴 천인이 좌우에서 시신을 외관하는 형식으로 시립해있다. 다시 천인상 뒤쪽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동,천녀 4인이 등장하는데 피리, 해금, 비파등을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등장인물 주변에는 오색서운으로 가득 채웠는데 서운의 색상으로 차분하고 조화로워 그림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삼세보전에 모셔진 지장목탱은 국내유일의 목불탱으로서 천 분의 지장보살을 전통목공의 예술혼이 깃든 수작업으로 조성한 목탱이다.

목탱의 내용은 부처님의 위모설법(爲母說法)을 형상화한 것으로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수미산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천상계)에서 설법하고 계실 때, 시방세계의 수많은 부처님과 대보살마하살들이 모여

석가모니부처님이 오탁악세에 능히 불가사의한 대지혜와 신통력으로 조복하기 어려운 중생들을 다스릴 것을 말하였다. 또한 지장보살의 수많은 분신들을 수기하시고 사바세계에서 미륵불이 나타나실 때까지

모든 중생들을 해탈시켜서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것을 지장보살에게 부촉하셨다고 한다.(지장경)

그 많은 보살마하살들중에 지장보살의 분신이 일 천분이 나투시었다 하여 일천지장보살목탱을 조성하여 모신 것이다.

산령각, 만덕전(萬德殿)이라고도 불리는 산신각은 산신령을 봉안한 당우로 우리나라 사찰에만 존재한다. 이는 우리 불교가 토착화해온 과정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이다. 산신은 원래 우리나라 고유의 토착신앙이었으나 불교가 재래신앙을 수용하면서 산신은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이르러 불교안에서 지금처럼 본래의 모습을 찾아 독립된 전각을 지어 모시게 된 것이다. 신의 정기를 믿고 산신령을 믿음으로 산신을 섬기게 된 것인데, 산신은 백발노인으로 표현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늘 산신옆에 배치되어 있다. 산신은 불전에 그 근거가 없으므로 산신전(山神殿)이라 하지 않고 산신각이라고 한다. 현재 산신각(山神閣)에서는 자식을 원하는 사람과 재산이 일기를 기원하는 신도들의 산신기도가 많이 행해지며 충효사에서는 따로 산신각을 세우지 않고 노천에 자연의 일부인 대리석으로 조성하여 신령스런 보현산에서 막 내려오신듯한 산신할아버지를 참배할 수 있어 그 기도영험이 더하다.

십이지를 상징하는 수면인신상(獸面人身像)이다.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에는 갖가지 신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불법을 수호하거나 불교인을 지켜주는 신들이다. 제석천이나 범천 등과 같이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있는 한편, 불교가 전파되면서 여러 지역의 신들이 수용된 경우도 많다. 용과 호랑이는 물론 도깨비까지 등장하는 것은 불교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십이지신은 땅을 지키는 열두 가지 짐승들의 신으로 흔히 우리의 띠에 해당하는 신들이다.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가 십이지신인데 얼굴은 짐승이지만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열두 방위를 지킨다고 한다. 이러한 십이지신은 도교의 방위신앙의 영향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약사신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 십이지신의 『약사경』을 외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들로 알려져 있다.

십이지신앙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 성격을 지녔으나 그 후 차츰 방위신으로 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묘나 탑을 세울 때 방위에 알맞은 십이지신상을 조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불교에 수용되면서 특히 약사불에게 공양하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봉안하는 전각이다.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 삼성각 안에 고려 말의 삼대성승(三大聖僧)인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삼성(三聖)과 칠성·독성 등을 봉안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불리는 독성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들로서, 하근기(下根機) 중생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그 건물의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으로 일컬은 것이다.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머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 별것이 다 들어 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리었다.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어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자유인이었다. 913년 3월에 명주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미륵 참 미륵이여(彌勒眞彌勒)

천 백억의 몸으로 나누어(分身千百億)

때때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건만(時時示時人)

그 사람들 알지 못하더라(時人自不識)‘

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이 포대화상은 후일 기독교에서 산타크로스로 비유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포대화상의 불룩한 배를 만지면 복이 증장되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복덕이 주어지기까지는 포대화상의 수행정진의 결과이므로 우리도 포대화상처럼 항상 맑고 밝게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보탑(寶塔)이란 귀한 보배로 장식한 탑이란 뜻이다. 삼세보전 앞에 조성된 삼세보탑은 충효사에서 기도하여 기도성취를 한 불자님이 세운 것으로 그 기도영험이 깃들어 각종 행사나 천도재 후 탑돌이를 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특히 인연기도 발원자나, 각종 소구소망이 있는 분은 한 가지씩 발원하며 탑돌이를 하게 되면 만사가 형통해지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⓵ 보현산 충효사 호국지장대범종

범종은 부처님의 법음(法音)을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널리 편다는 의미를 가진다.

법음(法音)은 곧, 진리(眞理)이며 진리는 시방세계의 어떤 사물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니 인륜의 도덕가운데에도 진리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고 더 큰 진리로써 불자들을 제도하려함이다. 산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 번뇌를 훌훌 벗어버리듯 인생의 고락을 마치 밤하늘에 날려 보내듯 삶의 참 진리를 깨달은 도인의 마음인 듯 넉넉하고 은은할 것이다.

산에는 절이 있어 한결 미덥고 절에는 종소리가 있어서 더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종소리는 신명(神命)을 깨우고 시방세계에 두루 울려 퍼져서 뭇 중생들을 각성시킨다.

종소리는 지옥에서 고통을 겪는 중생들의 악업과 고통을 멈추게 한다.

또 사바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현상이 무상(無常)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번뇌와 사악에서 벗어나게 한다.

종은 마구니를 항복시키고 중생의 고뇌를 없애 보리를 성취케 한다. 그러므로 종을 만드는 마음은 성스러울 뿐 아니라 더없이 지극한 기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종은 주술적인 힘을 가지므로 제례나 의식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울려왔다.

이에 충효사 호국지장대범종은 불자님들의 서원을 실어 부처님전으로 인도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범종은

땅 속 동물과 지옥의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 타종한다.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⓶ 법고

종루에 있는 큰 북을 법고라 한다. 여러 가지 불교행사 때 쓰이는 법구로써 주로 조석에 올리는 예불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다. 특히 북을 치는 소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닮아서 온 몸을 힘차게 격동시켜 힘과 용기가 솟아서 그 소리를 듣고 온갖 축생(畜生)들이 제도를 받게 된다. 북은 부처님이 설법으로 중생의 번뇌를 격파하는 모습이 마치 대군(大軍)이 큰 북을 둥둥 치며 적군을 물리치고 진군하는데 비유해서, 불타의 설법을 법고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법고를 두드리는 것은 중생의 번뇌를 모조리 격파하는 것을 뜻한다.

⓷ 운판

운판은 불교의식에 쓰는 불전사물(佛典四物)의 하나이며, 구름모양을 한 얇은 청동판을 운판이라 한다.

이를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일종의 낭만적인 악기이다. 이 소리를 듣고 공중에 이는

고혼(孤魂)과 하늘을 나는 조류계(鳥類界)의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⓸ 목어

법구사물중의 하나로 물고기 모양으로 목어고(木魚鼓), 어고(魚鼓), 어판(魚板)이라고도 하며, 누각에 걸어두고 두드리는 것이다.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따르면,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쉬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한다.

또한 옛날에 한 스님이 스승의 말을 어겨 수행을 게을리 하고 옳지 못한 짓만 하다가 죽었다.

그는 죽은 뒤에 이 세상에서 지은 업장으로 등에 한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난 물고기로 환생하여 바다 속에서 사는데,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등의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심한 고통을 늘 겪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면서 참회와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 스승님이 배를 타고 그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다. 물고기는 스승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스승은 이를 가엽게 여겨서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서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이때 물고기 등에 심은 나무로 목어를 만들어서 절에 걸어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목어를 울리면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과 수중고혼들이 제도된다고 한다.

목어의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에서 차츰 머리가 용을 닮아 용두어신(龍頭魚身 : 용머리에 물고기모양의 몸)의 형상으로 변하여 지금은 입에 여의주를 문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부처님(佛像)을 모신 절(寺院)의 중심이 되는 건물, 대웅이란 부처님을 가르키는 말로서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 두루 펼친 위대한 영웅이란 뜻이다. 충효사 대웅전은 큰스님께서 오시기 전에 달랑 한 채만 있었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후불탱이 모셔져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각종 수험생 및 사업성취발원자들이 기도하여 영험을 본 곳이다. 지금도 많은 불자님들이 정초에 인등을 밝히고 부처님 오신날에는 법당등을 달아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드리는 장소이다.

충효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은 석불(石佛)과 더불어 충효사의 대표적인 조각으로 조형예술(造形藝術)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견 단조롭게 보이는 석탑에도 나름의 개성(個性)이 있고, 예술적 틀을 보여준다.

<불탑의 기원>

탑은 ‘탑파’(塔婆)를 줄인 말이며, 탑파는 스투파(Stũpa)라는 범어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다.

또는 팔리어(巴梨語, Pali)의 투우파(Thupa)의 음사에서 유래된 약칭으로 사리의 봉안 유무에 따라 탑파, 또는 지제(차이티야,파리 어로는 체티야 cetiya)라고 하는데, 사리가 없는 탑을 ‘차치티야’라고 구별하기도 하였다. 탑은 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이다.

최초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열반 후 화장을 함으로써 사리를 얻게 되었고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 바로 탑파, 불탑이 되었다.

그러므로 불탑은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의 무덤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탑은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신성시하였으며 예로부터 우리 불자님들이 탑돌이를 통하여 소구소망을 발원해왔던 것이다.

3층석탑 바로 앞에 모셔진 부처님은 약사여래부처님이시다. 동방유리광세계(東方琉璃光世界)의 교주로서 대의왕불(大醫王佛)인 약사여래(藥師如來)부처님은 현세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고,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켜주며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모든 재난을 없애주겠다는 12가지 큰 서원을 이룬 부처님으로서, 대개 손에 약병이나 약합, 약단지를 들고 약기인(藥器印)을 짓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약사여래부처님은 고거세에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킨다는 십이대원(十二大願)을 세워 그공덕으로 부처가 되었으며,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화를 소멸시켜 원만행을 닦게 하여 무상(無上)보리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로서, 그의 이름을 외우고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약사신앙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강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진 것으로 우리나라의 중요한 신앙형태가 되었다. 특히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부처님은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여 뭔가 깊이 사색하는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상호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느 사진작가는 일명 얼짱부처님이라고 책자에 소개하기도 했다.

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사리는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로

유신(遺身), 또는 신골(身骨)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자 부처님과 인연이 있던 여덟 나라에서 사리를 나누어 탑에 봉안했다. 당시 중생들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사리를 친견하고 가르침을 되새겼다. 입적한 고승대덕을 다비한 후 나온 사리 역시 신봉되어 탑에 모셔지기도 했는데, 이런 탑을 부도라고 한다.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공덕과 같으므로 사리친견을 통해 죄업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 충효사에 사리가 봉안됨으로써 충효사는 부처님이 상주하시는 지장성지가 되었다.

충효사는 무병의 세계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기회를 드리기 위해 부처님오신날에 친견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큰스님 친견 하실 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가 있다.

용왕(龍王)각은 용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흔히 수신.해신이라하여 농.어민의 유력한 신으로 숭배되며, 용 가운데 임금이며 용궁에 살면서 비와 물을 맡고 또한 불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충효사 용왕각에는 용왕인등을 밝혀두고 있으며, 사업성취나 가정의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많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사업성취나 가정화목 및 액란을 소멸하려면 용왕각에서 기도를 드리면 좋다고 한다.

용왕각 바로 옆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신령의 정화로서 어질고 상서로운 은택을 베풀며, 연지[脂]처럼 응어리가 져 있고 엿[飴]처럼 달콤하다. 가히 감로수(甘露水)라 할 수 있다.

용탑은 두 마리의 용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거대한 대리석으로 조성하여 신성함을 더해주고 있다. 용탑에는 용왕각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물을 대하는 불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용탑불사는 아직까지 완성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불사에 동참하실 수가 있다. 1인당 100만 원 이상 불사에 동참하시면 용탑에 이름을 올려드리며, 하늘로 승천하는 용과 같이 사업성취 및 승진을 위한 기도를 일심으로 드려보기를 권한다.

안양요는 일반적으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지장전 또는 명부전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충효사 안양요는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아울러 큰스님께서는 지장보살님의 대원을 기필코 이루시겠다는 원력으로 49일 지장기도 100회째를 회향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며, 우리 불자님들을 일일이 친근하여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시는 자비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불자님들의 조상영가위패를 봉안하여 언제나 법문과 천도기도를 올리는 기도영험의 현장이다. 몸 아픈 분, 뭔가 잘 안 풀리는 분, 가정화목등 모든 발원은 안양요에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님이 상주하시고, 자비대원력을 증득하신 큰스님께서 고난중에 있는 불자들을 친근하시는 곳!

우리 불자님들의 조상들이 모셔져 있으며, 거기에 우리 불자님들의 정성만 깃든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기도하면 반드시 성불을 주시는 곳이다.

지장기도영험도량 충효사의 시작이 이곳 안양요에서 부터이다.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시는 공덕은 수미산과 같습니다. 지장성지 충효사에서 원불봉안을 통한 불교 지장성지와 대작불사를 이루고자 함은 우리 불자님들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이 불사를 위한 불자님들 원력과 불제자들의 공덕(功德)을 모아 1인1지장 봉안불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1인1지장보살님은 불자 한 명 한 명이 간절한 염원으로 모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소원하는 바나 근기에 따라 자신들의 원불을 친견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1인1지장보살봉안의 대작불사는 충효사가 처음 시작한 불사로 한국불교 1,6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불사에 동참한 불자들은 불교사에 길이 남을 불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며, 지장보살 한 분 한 분에는 동참자의 이름이 새겨져 동참자의 소원과 원력을 담습니다. 1인1지장보살봉안불사는 발원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많은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도 다생겁의 인연인 만큼 수미산보다 높은 부처님의 공덕 앞에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고난받는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대자비의 성자이다. 특히 죄짓고 고통 받는 중생들을 건지되 저들이 지닌 터럭끝만한 공덕이라도 성숙시켜 천상에 나고 극락에 나도록 키우고 인도한다.

‘지장보살’은 매일 깊은 선정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고, 저들 하나하나를 모두 제도하는데 한량없는 분신을 나투신다. 그러므로 지장보살은 그 형상을 무어라 말 할 수 없으며, 중생이 생활하고 있는 어떤 구석이라도 함께 계시어 거룩한 위신력으로 인도하여 준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손에 연꽃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왼손에 연꽃을 쥐고 바른손에 여의주를 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장보살의 형상은 석장(錫杖)을 짚은 사문모습을 하고 있다.

⓵ 단타지장보살

충효사 지장대불부처님은 단타지장보살님으로 상호가 미려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하여금 불자님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으면 항상 자비로운 모습으로 지장성지 충효사를 굽어보고 계시며, 우리 불자님들을 지켜주고 계신다.

⓶ 무독귀왕

좌보처 무독귀왕(無毒鬼王)은 지장보살의 전생이야기에서 소녀의 지옥안내자로 등장하는데, 재수보살(首財菩薩)의 전신이라고 지장보살본원경에 전해진다.

⓷ 도명존자

우보처 도명존자(道明尊者)는 양주 개원사 승려였던 도명이 778년 명부(冥府)에 잘못 끌려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고 있다.

◈ 육지장보살님

* 천상세계 지장보살 일광지장

육도 중생들이 복을 짓고 인연을 쌓아 천국에 태어나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타락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구제하는 보살

* 인간세계 지장보살 제계지장

모든 생명, 생물은 인과응보에 의하여 윤회되고 있는바 이러한 업보,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일으키게 하는 보살

* 아수라세계 지장보살 지지지장

질병과 전쟁등에서 헤매이고 투쟁과 경쟁에서 원한이 뭉친 아수라세계를 교화하는 보살

* 축생세계 지장보살 보인지장

어리석음과 욕심에 비롯된 업보로 인하여 짐승이 되어 고통을 받는 축생계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

* 아귀세계 지장보살 보수지장

기아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의 배고픔과 아쉬움을 덜어주고 구제하는 보살

* 지옥세계 지장보살 단타지장

북쪽으로 염부단 세계에 여러 가지 지옥이 있어, 지은 업보대로 회계가 될 때까지 갖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곳에 계시는 보살

충효사에는 대불전에서 삼세보전으로 오르는 길에 육지장보살님과 1인 1지장보살님들이 장엄하게 모셔져 있어 명실공히 지장기도 성지로 지장기도의 영험함을 드러내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고난받는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대자비의 성자이다. 특히 죄짓고 고통 받는 중생들을 건지되 저들이 지닌 터럭끝만한 공덕이라도 성숙시켜 천상에 나고 극락에 나도록 키우고 인도한다.

‘지장보살’은 매일 깊은 선정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고, 저들 하나하나를 모두 제도하는데 한량없는 분신을 나투신다. 그러므로 지장보살은 그 형상을 무어라 말 할 수 없으며, 중생이 생활하고 있는 어떤 구석이라도 함께 계시어 거룩한 위신력으로 인도하여 준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손에 연꽃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왼손에 연꽃을 쥐고 바른손에 여의주를 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장보살의 형상은 석장(錫杖)을 짚은 사문모습을 하고 있다.

⓵ 단타지장보살

충효사 지장대불부처님은 단타지장보살님으로 상호가 미려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하여금 불자님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으면 항상 자비로운 모습으로 지장성지 충효사를 굽어보고 계시며, 우리 불자님들을 지켜주고 계신다.

⓶ 무독귀왕

좌보처 무독귀왕(無毒鬼王)은 지장보살의 전생이야기에서 소녀의 지옥안내자로 등장하는데, 재수보살(首財菩薩)의 전신이라고 지장보살본원경에 전해진다.

⓷ 도명존자

우보처 도명존자(道明尊者)는 양주 개원사 승려였던 도명이 778년 명부(冥府)에 잘못 끌려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고 있다.

◈ 육지장보살님

* 천상세계 지장보살 일광지장

육도 중생들이 복을 짓고 인연을 쌓아 천국에 태어나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타락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구제하는 보살

* 인간세계 지장보살 제계지장

모든 생명, 생물은 인과응보에 의하여 윤회되고 있는바 이러한 업보,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일으키게 하는 보살

* 아수라세계 지장보살 지지지장

질병과 전쟁등에서 헤매이고 투쟁과 경쟁에서 원한이 뭉친 아수라세계를 교화하는 보살

* 축생세계 지장보살 보인지장

어리석음과 욕심에 비롯된 업보로 인하여 짐승이 되어 고통을 받는 축생계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

* 아귀세계 지장보살 보수지장

기아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의 배고픔과 아쉬움을 덜어주고 구제하는 보살

* 지옥세계 지장보살 단타지장

북쪽으로 염부단 세계에 여러 가지 지옥이 있어, 지은 업보대로 회계가 될 때까지 갖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곳에 계시는 보살

충효사에는 대불전에서 삼세보전으로 오르는 길에 육지장보살님과 1인 1지장보살님들이 장엄하게 모셔져 있어 명실공히 지장기도 성지로 지장기도의 영험함을 드러내고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을 형상화한 불상.

비로자나불은 화엄(華嚴) 삼신불(三身佛)인 법신 비로자나, 보신 노사나, 화신 석가불 등의 법신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는 ‘Virocana’의 음역으로 빛, 광명(光明), 적광(寂光) 등으로 의역되는데 비로자나불은 광명불 또는 적광불이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이나 생신(生身)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한다.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 華嚴經≫의 교주이다. 석가모니불을 응신(應身: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나 행위 경계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 안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자마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게 되며,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에게 비로자나불의 무량한 광명에 의지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게 예배하고 귀의 순종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 속에서 현실계의 상황을 스스로의 눈에도 비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보살행(菩薩行)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형체가 없는 비로자나불이 보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형체 있는 것으로 화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보살행이, 깨달음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부처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그 대원은

①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가득하게 하려는 원,

② 위덕이 높아서 중생을 모두 깨우치려는 원,

③ 중생으로 하여금 욕망에 만족하여 결핍하지 않게 하려는 원,

④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대승교(大乘敎)에 들어오게 하려는 원,

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한 업(業)을 지어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게 하려는 원,

⑥ 일체의 불구자로 하여금 모든 기관을 완전하게 하려는 원이 있다.

⑦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려는 원,

⑧ 일체 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남자가 되게 하려는 원,

⑨ 천마(天魔)·외도(外道)의 나쁜 소견을 없애고 부처님의 바른 지견(知見)으로 포섭하려는 원,

⑩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고난으로부터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

⑪ 일체중생의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려는 원,

⑫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훌륭한 옷을 갖게 하려는 원 등이다.

이것이 약사십이대원(藥師十二大願)이며, 그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또 한량없는 중생의 고통을 없애 준다는 것이다. 이 십이대원 속에는 약사여래가 단순히 중생의 병고를 구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등의 의식주문제는 물론 사도나 외도에 빠진 자, 파계자, 범법자 등의 구제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십이대원 이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때 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외우고 그의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

개인의 평안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약사도량(藥師道場)이 자주 개설되었는데, 이 또한 약사의 명호를 외우면 국가의 재난이 소멸된다는 약사여래의 본원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 선남선녀가 약사여래상을 조석으로 모시어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면 장수하게 됨은 물론 부귀와 관위(官位)를 얻게 된다고 한다.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

자비의 화신으로 숭앙되는 관세음보살을 형상화한 보살상.

보살은 대승불교의 성격을 가장 잘 구현하는 존재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깨달음을 얻을 능력이 있으나 자비심으로 중생 구제를 실천하는 존재이다. 구제할 중생의 종류와 성격이 다종다양하므로 다양한 보살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숭앙되는 대표적인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산스크리트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이며,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 등으로 번역하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 신앙의 근거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여기에서는 관음보살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설한다.

하나는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관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복덕을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구복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대중친화적인 지지를 받고 열렬히 신앙되어진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제도할 대상에 맞게 자유로이 몸을 변화하여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천수천안관음보살(千手天眼觀音菩薩) 등 다양한 변화관음의 형태로도 조성된다. 또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관음보살은 남쪽 바닷가의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 거주하는데 이곳은 온갖 보배로 꾸며진 아름답고 청정한 곳으로 이곳을 방문한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설법한다고 언급한다.

지장이 지옥의 중생을, 미륵이 내세의 중생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은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이다. 중생의 모든 것을 듣고, 보며 보살피는 의미를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으로 형상화 하여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자재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에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혹 큰 불속에 들어가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모든 큰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니라. 혹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즉시 얕은 곳에 이를 것이며, 혹 백천만억 중생이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등의 보배를 구하기 위해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설사 큰 폭풍이 불어와서 그 배가 뒤집혀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그 가운데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죽음의 난을 벗어나게 될 것이니 이러한 좋은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하느니라.”하였다.

불교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성취한 500명의 아라한.

충효사에는 세계최대 백옥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다.

오백비구(五百比丘)·오백상수(五百上首)라고도 한다.

아라한과는 소승불교에서 아라한이 이른 최고의 경지로서, 이를 깨달은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는다.

이들 오백나한에 대하여는 여러 경전에 기록이 있는데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이나 《십송률(十誦律)》에 의하면 석가가 중인도 교살라국의 사위성(舍衛城)에서 500명의 나한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고 하며,

《흥기행경(興起行經)》에는 매월 15일 500나한을 위한 계(戒)를 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서는 석가가 500명의 나한을 위하여 특별히 수기(授記)를 베푸는 모습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오분율(五分律)》에는 석가가 열반한 직후 중인도 마가다국(摩伽陀國) 왕사성(王舍城)의 칠엽굴(七葉窟)에서 500명의 나한이 결집하여 불전(佛典)을 편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제1결집을 오백결집이라 부른다.

석가 열반 후 600년이 지난 뒤, 인도 서북경의 가습미라(迦濕彌羅)에서 열린 제4결집, 즉 비바사론결집(毘婆沙論結集)에서는 500명의 비구(比丘)가 참가하였는데 이들도 오백나한으로 받들어진다.

또 당나라 사람 도세(道世)가 지은 《법원주림(法苑珠林)》에는 옛날 한 바라문이 학문을 좋아하여 항상 500상인의 동자를 가르쳤는데 그 500동자가 지금의 500나한이 되었다고 하고 또는 그때의 500상인이 지금의 500나한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오백나한이란 석가 생존시의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 등을 칭하는 데 두루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오백나한님을 참배하고 기도한다면 오백 분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 되고 무량공덕이 된다.